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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주말 드라마 폭군의셰프가 장안의 화제입니다. 저도 재밌게 보고 있는 주말드라마인데요. 드라마는 조선 제10대 왕연산군을 모티브로 한 '연희군'이라는 가상인물을 내세워 전개되고 있습니다.

 

드라마를 보다 보니 역사 속 연산군을 떠올리게 되는데, 갑신사화 이야기가 나오면서 어떤 사건인지 궁금한 분들이 많으실 것 같습니다. 

 

드라마에 나온 갑신사화는 실제 역사에서 '갑자사화(甲子士禍)'를 모티브로 하여 제작된 가상의 사건입니다. 이 사건으로 많은 신하와 그들의 가족이 희생되었으며, 연산군의 폭정은 극에 달하게 되었는데요.

 

오늘은 앞으로 드라마에서 전개될 갑자사화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목차

 


 

폭군의셰프 연산군 갑자사화

1. 갑자사화의 배경과 원인

연산군의 생모폐비 윤씨는 투기를 이유로 성종에게 폐위당하고 사사(賜死)되었습니다.

 

연산군은 어린 나이에 어머니의 죽음을 겪어 그 진상을 알지 못했으나, 즉위 후 임사홍 등 측근들의 고변(告變)으로 어머니가 죽게 된 전말을 알게 되면서 분노에 휩싸입니다.

 

특히, 성종의 총애를 받던 후궁 엄 씨와 정 씨가 폐비 윤 씨의 죽음을 부추겼다고 알려지자 연산군의 복수심은 극에 달했습니다.

 

2. 갑자사화 주요 희생자

갑자사화 연산군이 어머니 폐비 윤씨의 사사(賜死)에 관련된 인물들을 잔혹하게 처벌한 사건으로, 이로 인해 훈구파와 사림파를 가리지 않고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습니다.

 

연산군은 폐비 윤씨의 복권을 추진하고, 그녀의 죽음에 관련되었던 모든 사람들에게 잔혹한 보복을 시작했습니다. 주요 희생자는 다음과 같습니다. 

 

  • 아버지 성종의 후궁들: 연산군이 폐비 윤씨의 죽음에 관여했다고 생각한 엄 씨와 정 씨는 연산군에 의해 사망했습니다.
  • 관련 신하들: 폐비 윤씨에게 사약을 전달했던 이세좌를 비롯하여, 폐비 윤 씨의 폐위에 찬성했던 윤필상, 성준, 이극균 등이 처형되거나 귀양을 갔습니다.
  • 부관참시된 인물: 이미 사망한 사람들도 화를 면하지 못했습니다. 대표적으로 한명회, 정창손, 한치형, 심회 등 폐비 윤씨 폐위를 주장했던 인물들의 무덤이 파헤쳐져 시체가 다시 형벌을 받는 부관참시를 당했습니다.
  • 훈구파, 사림파: 갑자사화는 주로 훈구파에게 큰 피해를 입혔지만, 앞서 무오사화로 피해를 입었던 사림파 인사들 또한 희생되었습니다. 김종직의 제자였던 김굉필도 처형당했습니다.

갑자사화는 사육신 사건 때보다 훨씬 더 처참하고 잔혹했고, 8촌까지 말살당한 집안도 있을 정도로 유례없는 피바람이 줄기차게 불었습니다. 

 

3. 갑자사화 결과

갑자사화는 무오사화 때 피해를 입었던 사림파는 물론, 오랜 기간 권력을 누리던 훈구파까지 막대한 피해를 입혔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연산군의 왕권은 더욱 강화되었지만, 국정은 돌보지 않고 동시에 무자비한 폭정과 사치, 향락은 한층 더 심해졌습니다. 결국 1506년 중종반정이 일어나는 직접적인 원인이 됩니다. 

 

이 반정으로 연산군은 폐위되었고, 임사홍은 살해당했으며, 갑자사화의 주요 피해자들은 대부분 복권되었습니다.  

 

 

 


 

중종반정 연산군 최후

갑자사화(1504년)로 인해 연산군의 독단적인 통치는 더욱 심화되었고, 많은 신하들이 희생되면서 그의 폭정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었습니다.

 

결국 1506년, 박원종, 성희안 등을 중심으로 한 무신들이 중종반정을 일으켜 연산군을 폐위시키고 그의 이복동생인 진성대군(성종의 둘째 아들)을 새로운 왕(중종)으로 추대했습니다.

 

폐위된 연산군은 왕의 지위를 잃고 강화도 교동으로 유배되었습니다. 유배지에서 연산군은 유배지의 별감과 상궁들에게 조롱을 당하기도 했지만, 이를 묵묵히 견뎌냈다고 전해집니다.

 

그러나 유배 직후 열병을 앓게 되었고, 유배된 지 두 달여 만에 병으로 사망했습니다. (항간에는 독살되었다는 설도 존재합니다.) 

 

연산군의 묘는 현재 서울시 도봉구 방학동에 위치한 연산군묘입니다. 그는 조선 최초의 폐군(廢君)으로 기록되며, 조선 왕조 역사상 폭군의 대명사로 남게 되었습니다.

 

 


 

중종반정 장녹수 최후

장녹수는 조선 제10대 왕인 연산군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았던 후궁이자, 조선왕조 역사에서 가장 악명 높은 요부(妖婦) 중 한 명으로 기록된 인물입니다. 

 

문의현령을 지낸 장한필아버지이며 어머니는 그의 입니다. 어머니가 첩이었기 때문에 '일천즉천' 원칙에 따라 장녹수도 천민의 신분이었습니다.

 

연산군일기에서 살펴보면 장녹수는 제안대군(예종의 적차남)의 가비였다고 적혀 있습니다. 집이 몹시 가난해서 몸을 팔아 생활했고, 혼인도 여러 번 했습니다.

 

장녹수는 제안대군이 부리는 가노(집안의 노비)의 아내가 되어 아들을 하나 낳았고, 이후엔 춤과 노래를 배워서 창기가 되었습니다. 야사에서는 연산군이 미복차림으로 제안대군 집에 들렸다가 장녹수 노래를 듣고 반해 궁중으로 들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연산군 보다 연상으로 인물은 평범했고 그닥 미인은 아니라고 하는데요. 대신 엄청난 동안이라 30대에도 16살처럼 보였다고 합니다. 

 

장녹수는 연산군의 총애를 등에 업고 왕의 애정을 독점했으며, 엄청난 권세를 누리며 국정을 농단하고 재물을 모았습니다. 점점 백성들의 원성을 샀으며, 연산군의 폭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1506년 중종반정이 일어나 연산군이 폐위되자, 백성들의 분노를 피하지 못하고 장녹수는 전비, 김귀비 등과 함께 군기시 앞에서 참수형에 처해졌습니다. 이때 분노한 백성들은 시신에 수많은 돌멩이에 던졌는데 돌무더기에 파묻혔다고 전해집니다.

 

연산군과 사이에 딸 이영수 1명을 낳았습니다. 딸은 왕위 계승권이 없었기 때문에 죽임을 당하진 않았습니다. 

 

 


 

연산군 부인 중전 신씨(거창군부인) 

드라마 왕과 나 폐비 신씨 역 박하선

 

거창군부인 신씨1476년 12월 24일 생으로 연산군의 정실부인입니다. 영의정 신승선의 딸로 4녀(일곱째)이며 좌의정 신수근의 누이입니다. 또한 중종비 단경왕후에게는 고모이자 손위 동서가 되고, 세종의 아들 임영대군의 외손녀이기도 합니다. 

 

성종 18년 1487년에 성종에 의해서 세자빈으로 정식 내정되었고, 다음 해 1488년 동갑내기 연산군과 가례를 올려 세자빈이 됩니다.

 

창덕궁 인정전에서 책빈례를 거행 후 왕세자빈으로 책봉되었는데 간택 없이 책봉된 첫 번째 사례로 기록됩니다. 이때 두 사람의 나이는 11세였습니다.

 

폭군으로 악명을 떨친 남편과는 반대로, 부인 신 씨는 현모양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신 씨는 연산군이 폭군으로 변해갈 때에도 그를 말리려 노력하고, 갑자사화 당시에는 장검을 들고 침전으로 들어가려던 연산군을 말려 대비 정현왕후를 보호하는 등 현명한 모습을 보였다고 전해집니다.

 

연산군 또한 아내인 신 씨를 매우 아끼고 소중히 여겼다고 합니다. 연산군이 문란한 생활을 한 것은 사실이나 후궁에게 많은 자식을 두진 않았고,정실부인 신 씨에게 연년생으로 가장 많은 자식을 낳았는데요. 

 

폭군이 된 후에도 신씨 앞에서는 평정심을 유지했으며, 죽음을 앞두고 중전이 보고 싶다는 유언을 남긴 것을 보면 가장 사랑한 여인은 중전이었다고 평가합니다. 

 

1506년 중종반정으로 연산군이 폐위되자, 신씨 역시 왕비의 자리에서 물러나 폐비(廢妃)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남편을 따라 유배지로 가려고 울부짖었지만, 반정 세력의 반대로 유배되지 않고 사가(私家)로 돌아가게 됩니다. 이후 거창군부인(居昌郡夫人)이라는 작위를 받았습니다.

 

신 씨는 연산군이 폐위된 지 약 두 달 만에 강화도 교동에서 사망하자, 중종에게 연산군의 무덤을 이장해 달라고 청원했습니다. 중종은 이를 허락하여 연산군의 묘는 현재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으로 옮겨지게 되었고, 신씨는 이곳에서 남편의 묘를 지키며 살았습니다.

 

연산군과 신씨 사이엔 8명의 자식들 중 4명은 아기 때 죽었고 1명은 유산되었습니다.

 

연산군과 신씨 자녀들은 반정 이후 폐세자 이고 창녕대군은 왕자라는 이유로 살해되었고, 휘신공주는 사위를 강제로 이혼시킨 후 친정으로 돌려보내 목숨을 보전하게 했습니다. 휘신공주는 1524년에 구문경과 휘신공주의 묘를 세웠다는 걸로 보아 이 무렵 사망한 것으로 보입니다.

 

폐비 신 씨는 1537년 61세에 사가에서 사망했습니다. 

 

*중종반정 : 성희안, 박원종 등이 연산군을 몰아내고 성종의 둘째 아들 진성대군을 왕으로 추대한 사건. 어머니는 계비 정현왕후이다. (성종의 3번째 왕비) 

 

 

 


 

연산군 아버지 성종 가계도

 

 


 

연산군 가계도

 

 

 

 


이상 폭군의 셰프 연산군 갑자사화에 대해서 알아봤습니다. 사실 연산군은 어머니가 죽게 된 이유를 알지 못했다고 알려졌지만, 왕은 이미 재위 초반부터 생모의 죽음에 대해 알고 있었기 때문권력 강화의 수단으로 이용했을 거라 분석하고 있습니다.

 

연산군은 성종과는 다르게 강력한 왕권강화를 추구해 온 인물로 무오사화를 성공으로 이루었고 점차 쓸모없는 훈구 대신들을 몰아내기 위한 생각으로 사화를 일으켰을 수 있습니다.

 

 

연산군의 갑자사화 배경으로 피 묻은 적삼이 등장하는데요. 자신의 외할머니 신 씨를 통해 폐비가 죽을 때 흘린 '피 묻은 적삼'을 보고 분노해서 갑자기 갑자사화를 일으켰다고 드라마에 등장하지만 조선왕조실록의 연산군일기에는 없는 내용입니다. 

 

연려실기술에 이러한 이야기가 적혀 있긴 하지만 실록과 모순점이 많아 신뢰하긴 어려운데요.

 

하지만 내용 자체가 극적인 효과가 있었기 때문에 조선시대에 널리 퍼졌다고 유추할 수 있으며, 박종화 역사소설 '금삼의 피'에 처음 피 묻은 적삼 이야기가 등장하면서 대중들에게 알려졌습니다. 

 

 

폭군의 셰프는 12부작으로 이번 주에 마지막 회가 전개될 예정입니다. 드라마의 하이라이트로 갑신사화(갑자사화)가 시작되죠. 폐비 사건의 진실을 알게 된 이헌이 폭주하자 지영은 갑신사화(갑자사화)의 역사가 반복될지 두려워진다고 하죠. 

 

 

역사를 알고 보면 더욱 재밌을 것 같아요. 과연 어떻게 전개될지 흥미진진해지는데 폭군의셰프 이번 주 방송이 엄청 기다려지는군요. 폭군의 셰프토, 일 밤 9시 10분 TVN에서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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