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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의 슈퍼스타 남진은 대한민국 가수로 오빠부대의 원조격인 레전드 가수입니다. 1965년 데뷔한 이래 지금까지 꾸준한 활동을 하는 가요계 역사의 산 증인인데요.

 

한국의 엘비스 프레슬리라고 불리는 남진은 나훈아와 양대산맥으로 가요계를 뒤흔들었습니다. 트로트, 로큰롤을 오고 가면서 다양한 장르를 소화해 낸 가수이자 영화배우로 활동했습니다.

 

아직까지 팬층도 두껍게 살아있는 다재다능한 재주를 가진 남진! 그의 프로필의 역사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목차

 1. 남진 본명과 출생 나이
 2. 남진 집안 아버지 김문옥
 3. 남진 학력
 4. 남진 가수 데뷔
 5. 남진 해병대 입대와 베트남 파병
 6. 공백기와 가수 재기
 7. 남진 윤복희 결혼과 이혼 그리고 재혼
 8. 남진 자녀
 9. 남진 귀국과 재기
 10. 남진 집 아파트 히트곡

 

 

남진 프로필 

남진 본명과 출생 

남진 본명김남진입니다. 1946년 9월 27일생이며 78살입니다. 전남 목포부 창평동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본관은 김해 김씨, 는 174cm입니다.

 

 

남진 부모님 아버지 김문옥 

남진은 아버지 김문옥어머니 장기순 사이에서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가 50살에 아들 남진을 늦둥이로 봤다죠. 남진 할아버지 때부터 부농이었으며 집안에 곳간이 많았다고 합니다.

 

아버지 김문옥은 1896년 생으로 목포간이상업고를 졸업했습니다. 아버지는 쌀장사를 시작해서 성공했고, 목포에서 제일 큰 도정공장 남일정미소를 운영했습니다. 

 

일제 강점기 시대에는 전남 곡물협회장전남정미주식회사 사장을 지냈고, 광복 후에는 대한 식량공사 전남지부장, 목포상공회의소 회장, 목포일보 사장으로 활동했습니다. 

 

남진은 1953년에 미국 포드 자가용이 집에 있었다는 일화를 이야기했는데, 당시 꽤 거부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 김문옥은 1955년 민주당에 전남도당 당원이 된 후 1960년 정중섭 의원과 대결에서 선거에서 이겨 제5대 국회의원에 당선됩니다. 야당계에서 큰 역할을 했고 지역의 거부였습니다. 

 

남진이 초등학교 때 조병옥, 신익희, 장면 등의 정치인들이 집으로 종종 찾아왔었고 하룻밤 자고 가는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중학교 때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목포에 오면 꼭 아버지 집에 인사를 드리러 찾아왔었다고 하죠.  

 

 

 

 

 

 

남진어릴때부터 부유한 환경에서 자랐는데, 연극과 음악에 심취했었고, 중학교 때는 팝송을 즐겨 불렀었던 소년이었습니다. 

 

아버지는 그 당시 어른들처럼 말수도 적고 엄격하셨는데요. 부잣집 아들을 오냐오냐 키우면 버릇이 없어진다고 생각하셔서 아들에게 용돈도 안 주셨다고 하죠. 

 

어머니도 교육자라서 아들의 교육에 많은 신경을 썼다고 합니다. 집안에 가정교사까지 두었지만 남진은 공부보다는 예체능에 재능을 보였고, 특히 음악을 너무 좋아했다고 해요.

 

 

남진 학력 

남진은 목포북교초등학교, 목포중학교, 목포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라벌예술대학을 다니다 중퇴했습니다.

 

목포고등학교를 다닐 당시 레스토랑에서 팝송을 불러 밴드마스터에게 가수 제의를 받았고요. 남진은 영화배우가 되고 싶은 마음에 한양대 연극영화과에 진학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연예인이 되는걸 반대했는데, 그 당시엔 연예인을 딴따라라고 부르며 집안 망신이라고 여겼던 시대라 어른들의 반대는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남진 가수 데뷔 

남진은 가수로 데뷔하기 위해 그가 일했던 레스토랑에서 한동훈을 소개했고 그의 음악학원에서 2년간 트레이닝을 받았습니다.

 

1965년에 '서울 플레이보이'발표하면서 첫 데뷔를 했지만 대중의 반응은 싸늘했는데요. 그는 실망한 마음에 다시 고향으로 낙향했습니다.

 

다시 한동훈은 남진에게 오아시스 레코드사의 전속 가수 제안을 하며 2번째 앨범 '연애 0번지'를 발표했는데, 첫 앨범보다는 방송도 타고 흐름이 괜찮았지만 금지곡 처분을 당해 또다시 실패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다시 목포로 내려간 남진은 술로 세월을 보냈는데요. 당시 아버지가 병환으로 입원하셨는데 남진의 성공을 보지 못하신 채 돌아가셨다고 해요.

 

이후 어머니가 남진에게 '울려고 내가 왔나'라는 곡이 나는 좋았다고 말하면서 이곡으로 다시 도전해보라며 용기를 북돋어줬는데, 남진은 이 곡으로 대히트를 치면서 이름을 알리게 됩니다.

 

이후 박춘석 작곡'가슴 아프게' 곡도 최고의 인기를 누리게 되면서 MBC 신인가수상을 수상하며 스타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성공해서 처음으로 차를 뽑았을 때 어머니는 남편이 몇개월만 더 살았어도 아들의 성공을 보고 돌아가셨을 텐데 라며 안타까워하셨다고 하죠. 

 

남진은 배우가 되는것이 꿈이었는데 1967년 박상호 감독의 '가슴아프게'배우 데뷔를 하게 되면서 전국적인 흥행에 성공하게 됩니다. 이후 남진은 가요계와 영화계에서 빅스타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죠. 

 

 

 

 

 

 

 

남진 해병대 입대와 베트남 파병

남진은 한창 인기를 구사하던 당시 1969년 해병대 청룡부대에 입대합니다.

 

이후 베트남전에 파병되었는데, 원래 1년만 파병 가기로 되어있었지만,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귀국하면 베트남에서 동료들이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대한 남아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여단장에게 2년간 더 파병생활을 하겠다고 부탁한 뒤 3년간 베트남전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남진은 베트남에서 몇 차례 죽음의 위기를 넘기는 아찔한 상황도 있었다고 합니다.

 

월남전을 다녀와서 삶이 이런것도 있구나.. 전쟁터에서는 인기나 배움이 있고 없고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고, 전우애와 동료애를 느낄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공백기와 가수 재기 

남진은 군 복무로 인해 공백기가 생겼는데, '님과 함께' 라는 곡으로 다시 재기에 성공하게 됩니다. 당시 70년대로 나훈아와 함께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며 지금으로 따지면 오빠부대 팬덤을 생성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3년간 남진 3연속 가수상을 타며 승승장구했는데요. 1972년 나훈아 피습사건이 터지면서 남진이 범인이라는 루머가 급속도로 확산되며 낙인이 찍히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남진 윤복희와 결혼과 재혼

남진은 1976년 가수 윤복희와 결혼으로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3년 만에 1979년 이혼을 했는데요. 당시 남진이 윤복희를 내쫓고 폭행해서 이혼했다는 루머가 돌았지만 남진은 딱히 입장표명을 하지 않았었습니다.

 

이후 30년 만에 윤복희이혼에 대한 당시 진실을 모 예능프로그램에서 밝혔는데요.

 

윤복희는 남진과 결혼하기 전 첫사랑이었던 가수 유주용과 결혼했었고 미국에서 생활하고 있었는데, 결혼 후 윤복희는 가정에 충실하고 싶은게 꿈이었는데 남편 유주용은 자신보다 인기가 많은 윤복희가 일을 계속 하기를 원했다고 합니다.

 

당시 남편은 윤복희의 매니저 일을 자처했다고 했는데요. 이에 윤복희는 남편이 점차 약해져 가는 모습이 영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후 1975년 공연때문에 한국에 입국한 윤복희는 남진 씨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기사를 보게 되고, 당시 남편이었던 윤주용은 윤복희의 스캔들로 힘들어하자 자신을 믿지 못하는 남편에게 서운한 마음이 들어 홧김에 이혼을 했습니다.

 

이후 남진은 이 이야기를 듣고 윤복희에게 약혼반지를 가져왔고, 윤복희는 이혼 후 윤주용에게 보란 듯이 남진의 마음을 이용해서 결혼하게 됩니다. 

 

하지만 윤복희의 마음은 아직도 전 남편에게 향해있었고, 사랑하지도 않은 남진과의 결혼 생활이 행복할리가 없었습니다. 결혼 6개월 만에 윤복희는 남진에게 결혼반지를 돌려주고 서로 떨어져서 살았다고 하죠. 

 

당시 남진과 결혼했을 당시 윤복희는 아직 전남편과 완전히 이혼한 상태도 아니었다고 해서 더욱 안타까운 일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윤복희는 당시 남진의 사랑을 이용했다고 하면서 미안한 심경을 전했는데요. 당시 가해자로 지목된 남진이었는데 정작 알고 보니 피해자였던 것이었죠. 윤주용은 미국으로 건너가 일반인과 재혼했다고 합니다. 

 

남진은 당시 일을 회상하며 남자인 자신이 윤복희를 배려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서 이 사건에 대한 이야기는 입밖에 내지 않았다고 합니다. 정말 상남자네요!

 

이 사건과 함께 남진은 당시 신군부가 들어서며 아버지가 김대중 사람이었던 것 때문에 탄압을 받아 출연정지까지 받게 되자 마음의 상처를 입고서 미국으로 떠나게 됩니다.

 

하지만 미국에서 지금의 아내 강정연를 만나면서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었습니다. 강정연 씨는 재미교포로 미국에 공연을 가서 선배의 소개로 만났다고 합니다.

 

아내의 성격은 솔직하고 성격도 강한 편이라고 하는데요. 어머니가 전라도에서 유명한 점집 10곳을 다니면서 점을 봤는데 다 좋다고 했다며 직접 어머니가 혼인신고를 해버렸다고 하죠. 남진은 강정연과 1980년 호적으론 초혼이지만 사실상 재혼을 하게 됩니다. 

 

두 사람은 딸 3명을 미국에서 연이어 낳고 넷째가 만삭일 때 한국으로 귀국했습니다. 이후 막내로 아들을 낳았는데, 어머니가 옛날 분이시라 아들 손자를 원하셨기 때문에 아내가 고맙게도 아들을 낳을 때까지 아이를 낳겠다는 의지를 보였다고 하죠. 

 

어머니는 가수왕을 받았어도 성공했다는 말은 하지 않았는데, 아들을 낳았다고 하니 "이제 너 성공했다..수고많았다."라고 말씀하셨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남진 자녀

남진은 딸 3명과 아들 1명을 두고 있습니다. 현재 나이는 모두 40대라고 하는데요. 모두 연년생이라죠! 막내딸이 본인과 가장 닮았다고 합니다. 

 

아들은 미국 유학파이며 키가 180cm고, 2018년 일반인 여성과 결혼했습니다.  첫째 딸아들결혼을 했지만 아직 둘째와 셋째 딸은 미혼이라 같이 지내고 있답니다. 자녀들의 직업은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남진은 자신의 아버지와 비슷하게 아들에게는 무뚝뚝한 아버지였지만, 딸들에게는 세상 딸바보라고 하는데요. 하루에 딸과 뽀뽀를 여러 번 할 정도로 애정을 보인다고 하죠.

 

요즘 큰 행복은 큰딸 집에 가서 손주를 보는 재미라고 합니다. 큰 딸은 미모가 연예인 급이라 한때 기획사의 제안도 받았다고 하는데요. 현재는 결혼해서 잘 살고 있다고 해요. 

 

 

남진 귀국과 재기

남진은 미국에서 지낸 후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수년 동안 공백기가 있어서 슬럼프가 찾아왔었습니다. 가요계에서는 조용필이 대세인 시대였는데요. 이때 재기에 성공할지도 불투명한 마음이었다고 하죠.

 

박춘석 작곡가를 4년 만에 다시 만나 '빈잔'이라는 곡을 받고 다시 히트를 치면서 많은 사랑을 받게 되며, 그의 인기가 아직 살아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남진은 한번의 큰 사고를 당하는데, 호텔 카바레에서 노래를 부르고 나오다 주차장에서 차 문을 여는 순간 갑자기 나타난 20대 남성 괴한 3명에게 흉기로 허벅지를 찔리는 중상을 입게 됩니다.

 

이때 전치 3주로 순천향병원에 실려갔었는데 허벅지에 큰 동맥이 지나가는 곳이라 조금만 옆으로 맞았다면 사망할 수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후 건강이 나빠지면서 가수를 그만둬야 하는 건 아닌지 심각하게 고민했었다고 하고요. 지금도 한쪽 다리가 불편하다고 하더군요. 

 

이후 남진은 무명 작곡가였던 차태일 작곡가를 우연히 만나 '둥지'라는 곡으로 또다시 큰 인기를 끌게 되면서 활발한 활동을 하게 됩니다.

 

2009년에는 장윤정과 함께 '당신이 좋아'를 발표했고, '파트너', '너는 나만믿고 따라와', '남자다잉', '오빠 아직 살아있다' 등을 발매하며 현역으로 활동하면서 후배들의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남진 집 아파트 히트곡

남진은 2011년 한 방송에서 집을 최초로 공개했는데요. 그의 집은 팬트하우스 느낌의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는데, 성남시 분당에 위치한 파크뷰입니다. 인테리어도 중후한 느낌이 들면서 멋졌는데요.  이곳에서 부인과 두 딸이랑 반려견들과 함께 지내고 있습니다. 

 

남진 히트곡은 무수히 많은데요. 대표곡들을 적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울려고 내가 왔나 /가슴 아프게 /너와 나 /마음이 고와야지 /우수 /미워도 다시한번 /님과 함께 /목화 아가씨 /젊은 초원 /그대여 변치마오 /나에게 애인이 있다면 /김포가도 /빈 잔 /내영혼의 히로인 /둥지 /모르리 /나야 나 /당신이 좋아 (with 장윤정) /이력서 /상사화 / 파트너 /사치기 사치기(with 윤수현) /너는 나만 믿고 따라와 /남자다잉 /오빠 아직 살아있다

 


이상 가수 남진에 대한 프로필에 대해서 알아봤습니다. 금수저 막둥이로 태어난 남진은 꿈을 이룬 멋진 풍운아 느낌이 강했는데요. 몇 차례 사건과 사고로 인생의 그래프가 굴곡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가수로서의 숙명이 있었는지 그는 노래로 끊임없는 사랑을 받았는데요. 80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현역에서 활동하는 모습은 후배 가수들의 좋은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건강하셔서 오랫동안 방송으로 만나 볼 수 있기를 바라며 이상 마무리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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